하이팜

쇼핑몰 검색

#블루베리   #2023   #2024   #곶감   #오디   #고구마   #사과  

이야기

< 리더가 알아야 할 7가지 키워드 -비전을 품으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아리 댓글 0건 조회 1,653회 작성일 04-09-12 13:40

본문

< 리더가 알아야 할 7가지 키워드 / 존 맥스웰 >


:+: 다섯번째 키워드 - 비전을 품으라 :+:

리더십의 핵심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비전은 당신이 모든 상황에서 분명하고 강력하게 선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확신이 없을 때는 나팔을 불 수 없다.

- 시어도어 헤스버그
The very essence of leadership is you have a vision.
It? got to be a vision
you articulate clearly and forcefully on every occasion.
You can? blow an uncertain trumpet.
만델라(Mandela, Nelson Rohihlahla, 1918~ )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만델라는 1990년 2월 석방될 때까지 27여 년 간 복역하면서 세계 인권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1991년 7월 ANC 의장으로 선출된 뒤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했다. 드 클레르크의 백인 정부와 협상을 벌여 350여 년에 걸친 인종 분규를 종식시키고 그것으로 1993년 드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인생 목표는 이것이었다. “핍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를 다같이 해방시키기 위하여….”

:+: 꿈이 이루어지다

■ 꿈이 이루어지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감옥에서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던 날, 그는 조금 들떠 있었다. 그는 오후 3시에 석방될 예정이었으나 절차가 예정보다 길어졌다. 사람들이 그의 석방을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기 때문에 만델라는 그들이 낙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만델라는 오후 4시에 아내와 함께 정문으로 걸어갔다. 만델라는 가족과 친척을 중심으로 단 몇 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문에 다가서자 거대한 함성이 들려 왔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왔음을 알아차렸다. 수백 명에 달하는 기자들과 사진 기자들과 언론인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지지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만델라는 자서전 「멀고 먼 자유의 길(Long Walk to Freedom)」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문까지 5미터쯤 남은 곳에 이르자 카메라 플래시들이 터지는데 그 소리가 마치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포효하는 소리 같았다. 기자들은 소리쳐 질문을 던져 댔고 방송국 사람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ANC(아프리카 민족 회의) 지지자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행복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혼돈이었다.

만델라의 자유는 오랜 시간 뒤에 찾아왔다. 그가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놀라운 리더십 때문이었다. 소몰이꾼에서 민중의 리더로 1918년 로이홀라홀라 넬슨 만델라가 태어났을 때 그의 가족은 만델라도 자신들처럼 소몰이를 하며 살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그가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죽고 족장인 데이비드 달린디예보가 그의 후견인이 되었다. 달린디예보는 템부족 최고 추장이었다. 넬슨은 달린디예보의 영향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리더십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달린디예보는 며칠씩 걸리는 부족 회의를 자주 주재했는데 그때마다 항상 모든 사람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지도자였다.

행동하는 리더였던 자신의 후견인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만델라는 마음에 커다란 자극을 받았다. 1964년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 제가 처음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에 부족의 장로들이 마을에 모여 회의 중에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였습니다. 그들은 백인들이 오기 전 행복했던 옛 시절에 대해 얘기를 했죠. 우리 민족은 왕과 고문들의 민주적인 통치 아래 평화롭게 살고 있었답니다.

장로들은 우리에게 해방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장군과 군인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 말해 주었죠. 그때 나는 소원하고 맹세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내 민족을 섬기며 민족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겸손히 나 자신을 바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

민족을 위한 그 열망 때문에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대학을 졸업한 뒤 법조계에 뛰어든다. 그는 변화의 일선에서 뛰고 싶었고 법조계야말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길로 보였던 것이다.

1940년대 초반 만델라는 ANC에 가입했다. 만델라는 일단의 동료들과 거대한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이 나라에서 흑인들을 대우하는 방법을 바꾸는 운동이었다. 1940년대 중반 만델라는 이 운동을 가속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아프리카 민족의회 청년연맹(ANCYL)을 조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은 만델라의 리더십과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1947년 그들은 만델라를 서기관으로 임명했다.

1950년대에 만델라는 동료들과 함께 나라 안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총파업, 불매 운동, 시위, 비폭력 저항 운동을 펼쳐 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정부는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고 그들의 권리를 더 많이 빼앗아 갔다. 1956년 만델라와 150명의 사람들이 반역죄로 기소되던 날 대의를 향한 미래는 암울해 보였다. 만델라는 6년 동안 법정에서 싸운 결과 마침내 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인종 차별 정책을 하는 정부가 그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결국 그는 은신하게 되었다. 때로는 운전사로, 때로는 공공 근로자로 변장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검은 별봄맞이꽃’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죄수로서의 삶

만델라가 나타나자마자 정부는 그를 체포해서 재판한 뒤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런 시련 속에서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동안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투쟁에 헌신했습니다. 나는 백인 지배 계급에 저항했고 흑인 지배 계급에도 저항했습니다. 내가 품은 이상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갖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내가 삶을 바쳐 이루고 싶은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만델라가 감옥에 갇히자 정부는 그와 다른 ANC 지도자들에게 또 다른 죄명을 씌웠다. 근로자들의 기물 파괴를 배후 조종했다는 것이다. 만델라와 동료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고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델라는 감옥에서 은밀하게 민중을 이끌었다. 정부 지도자들은 그에게 자유를 줄테니 신념을 포기하라고 두 번이나 제의했다. 처음에는 정부의 흑인 거주자 이주 정책을 지지하면 감옥에서 풀어 주겠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폭력을 포기하면 풀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두 번 모두 거절했다. 1986년 마침내 전 세계가 인종 차별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를 비난하고 나선 데다, 남아프리카 흑인들의 저항 운동이 갈수록 거세지자 정부는 만델라와 비밀 회담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마침내 인종 차별 정부는 해체되고 만델라는 1990년 2월 11일에 석방되었다.

■ 꿈이 이루어지다!

1994년 5월 10일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의 대통령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 세계 사람들이 축하했다. 불과 10년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일이 일어났다. 세계에서 인종 압박이 가장 강하던 나라에서 흑인 대통령이 세워진 것이다.

그 당시 만델라는 75세였다. 그는 소년 시절, 부족의 장로들이 불어넣어 준 비전을 위해 한 평생을 바쳤다. 그는 민주적인 통치 아래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공헌했다. 그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리더가 될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없음


TOP

상품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쇼핑계속하기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