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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가 알아야 할 7가지 키워드 -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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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리 댓글 0건 조회 1,767회 작성일 04-09-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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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가 알아야 할 7가지 키워드 / 존 맥스월>


:+: 첫번째 키워드 - 섬기라 :+:

리더십은 좋은 의도에 기초해야 한다. 좋은 의도란 거짓된 태도를 갖지 않는 것이며 적어도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좋은 의도란 따르는 사람들을 돕는 데 전심을 다해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리더에 질렸고,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리더에 질렸고, 함께 있어야 자유를 쟁취할 수 있게 만드는 리더에 질려 버렸다.

우리가 원하는 리더는 우리를 도우려는 마음 때문에 실제로 자기 일에 대한 필요조차도 내려놓을 수 있는 리더다. 그런 리더는 결코 자신의 일에서 밀려나거나 사람들을 잃지 않는다. 위대한 리더는 권위를 포기함으로써 권위를 얻는다.

- 제임스 B. 스톡데일 해군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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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장하고 나누는 것이다.
인생에서 해 온 모든 일들을 되돌아볼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고 그들을 이긴 순간보다
그들의 삶에 당신이 기쁨을 준 순간을 회상하며 더 큰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 랍비 해롤드 쿠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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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웅적 자질은 아주 차분하고 평범하다.
진정한 영웅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

- 아서 애쉬


■ 권력보다 소중한 것

1775년 6월 15일 미국 독립 혁명 전야에 존 아담스는 의회에서 식민지 연합의 총사령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동료 정치인들은 즉각 그의 지명에 찬성했다. 대영제국에 대항하여 일어난 미국 독립 혁명의 결과를 결정지을 이 자리에 그들은 누구를 임명했는가? 바로 조지 워싱턴이다.

왜 이 나라의 창시자들은 43세 된 버지니아 출신 농부, 워싱턴을 선택했을까? 왜 그를 선택하여 대영제국의 윌리엄 하우 경, 헨리 클린턴 경, 찰스 콘월리스 경 같은 노련한 장군들과 맞서게 했을까?


■ 권력의 길에 들어서다

1732년 버지니아의 농가에서 태어난 워싱턴은 어려서부터 농장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십대가 되자 그는 토머스 페어팩스 경의 조사팀에 참여하여 셰난도어 계곡처럼 먼 황무지까지 가서 조사하는 일을 배웠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워싱턴은 버지니아 군에 입대하여 군사 작전을 공부했다. 1753년 그는 중요한 임무에 선발되었다. 프랑스군이 오하이오 강 계곡에 들어와 영국령이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요새를 지으려 했다. 그래서 험악한 길을 따라 표식을 남기고, 프랑스군의 사령관을 만나 행동을 중단하고 그 지역에서 퇴각하라는 영국 국왕의 메시지를 전할 칙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일은 많은 자질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이었다. 험난한 황무지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체력, 사나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상대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프랑스군과 대면하여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그 임무를 맡았다. 그는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프랑스군 사령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영토를 뚫고 혹한의 겨울에 답장을 들고 귀환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중령으로 승진했고 16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그 지역으로 재진입하여 프랑스군과 싸우는 일에 선발되었다. 1년 후 그는 다시 에드워드 브래독 장군의 부관으로 자원하여 오하이오 강 계곡으로 돌아왔다. 워싱턴이 포화 속에서도 용감하고 침착한 전사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브래독 장군의 부대에 있을 때였다.

브래독 장군 휘하의 영국군과 식민지군이 모농가헬라 강 근처에 있는 협곡에서 프랑스군과 아메리카 원주민 전사들의 매복지에 갇혔을 때, 그는 즉각 행동을 취했다. 브래독 장군에게 와서 정규군이 매복지를 뚫고 나아가도록 독려하다가, 후방으로 가서 버지니아 부대를 전선에 투입시켰다. 브래독을 포함해서 장교들이 하나 둘 사상당하고 있었지만, 그는 전군을 모아 전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탈출한 군사들의 목숨을 건져 내는 공훈을 세웠다.

그 전투에서 모두 60명의 장교가 목숨을 잃었다. 워싱턴이 타고 있던 말 두 필이 총에 맞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자신의 상의에 총알 네 발이 스쳐 지나간 흔적을 발견했다. 기록에 의하면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그를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결국에는 포기했다고 한다. 워싱턴이 ‘위대한 신’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연대장이 되다

한 달 후, 워싱턴은 대령으로 진급되었고 버지니아군 전체를 지휘하는 연대장이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3세였다. 그는 군인의 길을 계속 가고 싶었지만 주지사의 간헐적인 지원, 박봉, 식민지군 장교들에 대한 부당한 처사로 인해 좌절에 빠졌다. 그는 1758년 버제시즈에 있는 버지니아 하우스에서 선거에 승리한 뒤 군복을 벗고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가 군인 리더십이 아닌 정치 리더십으로 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1, 2차 대륙 의회에 선출되었고 1775년에는 대륙군의 지도자로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 총사령관이 되다

워싱턴은 군대를 이끌 권력을 획득했다. 6년 동안 그는 탁월하게 군대를 통솔했다. 규모가 더 큰 적과도 싸웠고 힘든 위기도 견뎌냈고 경험이 훨씬 많은 장군들에 맞서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결국 그는 미합중국의 자유를 지켜 냈다. 1781년 그는 대영제국의 군대를 대파하고 콘월리스 장군의 항복을 받아 냈다.

워싱턴은 영국과의 전쟁 중 약한 정부를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내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들에 봉착했다. 사람들이 그가 이 나라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그에게 여러 번 권고했다. 의회가 군 장교들에게 상당 기간 동안 임금을 주지 않자, 1783년 3월 일군의 장교들이 뉴욕에 있는 뉴버그의 본부에 모여 반정부 행동을 논의했다. 다수의 사람들은 워싱턴이 자신을 지지하는 군대를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오히려 그들을 설득하여 정부의 지도자들이 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자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뜻을 굳힌 상태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지막 시도를 했다. 최근 자신이 한 의원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어 준 것이다.

역사의 물줄기가 움직이는 시간에 그는 잠시 멈춰 서서 편지를 들여다보다가 안경을 꺼내 들고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나의 조국을 섬기느라 이제 백발이 성성하게 되었다네. 이제는 눈앞이 잘 보이지도 않네.” 이 말에 장교들은 숙연해졌고 그들은 의견을 돌렸다. 조지 워싱턴의 전기를 쓴 제임스 플렉스너는 말했다. “이 모임이야말로 역사상 미합중국에서 열린 모임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 권력보다 가치 있는 섬김

한 달 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워싱턴이 총사령관직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직책을 맡을 때 자신의 사명을 다하면 사임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는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불안한 출발선상에 있던 당시 미국 사람들은 초대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해 워싱턴을 다시 찾았다. 그 이유는 그가 권력보다 섬김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선거 위원단은 만장일치로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미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미합중국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일어난 수많은 애국자들과 용감한 리더들 가운데서도 조지 워싱턴은 그 누구보다 리더가 될 자격을 획득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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