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무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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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재기 댓글 0건 조회 1,708회 작성일 09-04-23 21:37본문
무딘 칼날
구재기
날카로운 것은
언제나 무디게 써야 한다
감꼭지를 돌려 잘라내다가
손바닥을 찍힌 막내를 보고는
나는 곧바로 과도 끝을 잘라냈다
날 선 세상 살아가려면
내미손처럼 조금은 만만히 살아가야지
무논 가득 차가운 달빛을 채우며
개구리떼처럼 쩡쩡 울어서야 되겠는가
몇 백 년 전 전장을 휩쓸던 칼끝도
땅속 깊은 곳 아무도 모르게
조금조금 제 끝을 삭혀와
평화의 이 시대에 발굴되었듯이
직선처럼 날카로운 길이 아닌
먼 길을 돌아
어리숭하게 길을 간다면
갈 길의 길눈은 트이게 마련
제 몸을 삐걱대면서
모서리를 갈고 있는 낡은 의자에
나는 흐미한 체온을 덧씌우며
막내의 찢어진 손바닥을 채며주었다
*내미손 : 물건 흥정하러 온, 어수룩하고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
*채며주다 :‘묶어주다’의 충남 서천지방 사투리
2008. NO.14. [계간문예] 겨울호
[축제]는 잘 마치셨는지요? 올해도 수선화가 만발한 봄을 만끽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즐거운 봄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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