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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판사댁의 가계부, [촌년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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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재기 댓글 1건 조회 1,416회 작성일 08-05-2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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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좋은 날을 이루소서!


구재기 절




어느 판사댁의 가계부,
[촌년 10만원]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며 판사 아들을 키워낸 노모는, 밥을 한 끼 굶어도 배가 부른 것 같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뉴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등, 세상을 다 얻은 듯 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런 노모는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걷이를 이고 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했으나, 이 날따라 아들만큼이나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자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촌노의 눈에 신기하기만 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되었다. 그 물건은 바로 가계부다.


부자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며느리가 쓰고 있는 가계부를 보고 감격을 해 그 안을 들여다보니 각종 세금이며 부식비, 의류비 등 촘촘히 써내려간 며느리의 살림살이에 또 한 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조목 나열한 지출 내용 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년 10만원'이란 항목에 눈이 머물렀다. 무엇을 샀길래 이렇게 쓰여 있나 궁금증이 생겼으나 1년 12달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바로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준 날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 아들 가족에게 줄려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지고 간 한해 걷이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 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길에 올랐다.


가슴이 터질 듯한 기분과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속으로 삭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금지옥엽(金枝玉葉) 판사 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 왜 안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


라는 아들의 말에는 빨리 귀향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한 가득 배어 있었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폭탄을 터트리듯


“아니, 왜? 촌년이 어디서 자-아?”


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어머니 무슨 말씀을...., '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모는,




“무슨 말?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있는 공책한테 물어봐라, 잘 알 게다”


며 수화기를 내팽기치듯 끊어 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 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 집에서 큰 소리 난다고 소문이 날 것이고, 때리자니 폭력이라 판사의 양심에 안 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마련으로 몇 날 며칠을 무척이나 힘든 인내심이 요구됐다.


그런 어느 날 바쁘단 핑계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뒤로 미루던 남편이 처갓집을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나 선물 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 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갓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모두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마당에 서 있자, 장모가,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 들어오는가?”,


사위가 한다는 말이,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자집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고는, 차를 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빌었다.


이러 한 일이 있고 난 다음달부터 '촌년 10만원'은 온 데 간 데 없고, '시어머니의 용돈 50만원'이란 항목이 며느리의 가계부에 자리했다.


이 아들을 보면서 지혜와 용기를 운운하기 보다는 역경대처(逆境對處) 기술이 능한 인물이라 평하고 싶고, 졸음이 찾아온 어설픈 일상에서 정신을 차리라고 끼얹는 찬물과도 같은 청량함을 느낄 수 있었다.<옮긴글>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며 판사 아들을 키워낸 노모는, 밥을 한 끼 굶어도 배가 부른 것 같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뉴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등, 세상을 다 얻은 듯 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런 노모는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걷이를 이고 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했으나, 이 날따라 아들만큼이나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자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촌노의 눈에 신기하기만 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되었다. 그 물건은 바로 가계부다.


부자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며느리가 쓰고 있는 가계부를 보고 감격을 해 그 안을 들여다보니 각종 세금이며 부식비, 의류비 등 촘촘히 써내려간 며느리의 살림살이에 또 한 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조목 나열한 지출 내용 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년 10만원'이란 항목에 눈이 머물렀다. 무엇을 샀길래 이렇게 쓰여 있나 궁금증이 생겼으나 1년 12달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바로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준 날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 아들 가족에게 줄려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지고 간 한해 걷이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 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길에 올랐다.


가슴이 터질 듯한 기분과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속으로 삭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금지옥엽(金枝玉葉) 판사 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 왜 안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


라는 아들의 말에는 빨리 귀향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한 가득 배어 있었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폭탄을 터트리듯


“아니, 왜? 촌년이 어디서 자-아?”


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어머니 무슨 말씀을...., '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모는,




“무슨 말?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있는 공책한테 물어봐라, 잘 알 게다”


며 수화기를 내팽기치듯 끊어 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 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 집에서 큰 소리 난다고 소문이 날 것이고, 때리자니 폭력이라 판사의 양심에 안 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마련으로 몇 날 며칠을 무척이나 힘든 인내심이 요구됐다.


그런 어느 날 바쁘단 핑계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뒤로 미루던 남편이 처갓집을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나 선물 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 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갓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모두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마당에 서 있자, 장모가,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 들어오는가?”,


사위가 한다는 말이,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자집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고는, 차를 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빌었다.


이러 한 일이 있고 난 다음달부터 '촌년 10만원'은 온 데 간 데 없고, '시어머니의 용돈 50만원'이란 항목이 며느리의 가계부에 자리했다.


이 아들을 보면서 지혜와 용기를 운운하기 보다는 역경대처(逆境對處) 기술이 능한 인물이라 평하고 싶고, 졸음이 찾아온 어설픈 일상에서 정신을 차리라고 끼얹는 찬물과도 같은 청량함을 느낄 수 있었다.<옮긴글>








댓글목록

최애순님의 댓글

최애순 작성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농촌 살림에는 귀한 어머니들의 손길이 도시에서는 어떻게 비쳐지는지 궁금하네요.  끝없이 헌신하신 이 땅의 어머니들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지혜롭게 처리하는 과정이 좋네요.귀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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