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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속에 있는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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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애순 댓글 0건 조회 1,916회 작성일 08-07-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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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악수해도 되나요?"


"그럼요." 선뜻 손을 내민 그 손을 반갑게 잡았다.




''김성국''-2008. 7. 4. 우리를 개성시내 관광안내했던 북한 청년이다.


그가 개성관광 13-2호차를 타기 전에 버스기사는 안내원에게 너무 형식적이고 딱딱하게


행동하지 말 것을 주의해 주었지만 모두는 긴장해 있었다.




분단의 아픔. 우리는 동일한 한민족을 마치 뿔 달린 도깨비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 큰 슬픔이 어디 있을까?


흰 아이셔츠에 검정바지를
단정하게 차려 입은 그는 우리가 이 곳에 오기까지 거쳤던


많은 검문 절차에 긴장되어 있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주었다.


우선 목소리가 맑았다.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된 안내는 마치 역사학자가 유물을 발견하고 설명하듯이


하나하나 지나는 곳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매번 잊지 않고 당부하는 말은 허락되지 않은 곳의 사진 촬영은 금한다는


일관된 이야기를 매번 반복했다.




그의 안내에 따라 박연폭포, 관음사, 숭양서원, 표충사. 선죽교, 개성박물관, 개성공단을 차례로 견학했다.




개성출발


우리는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해 2008년 7월 4일 오전5시20분에 인천 월미도에서 출발했다.


이미 전날 해군 제2사령부와 인천상륙작전지인 월미도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고


월미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6시40분에 임진각에 도착하여 여러 수속을 밟았다.


핸드폰, 카메라(필림용), 종교서적, 종교안내 글이 있는 어떠한 종류의 팩자나 안내서는 금지, 잡지류등 제재하는 것들이 많아 아예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미 안내서에는 물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그것조차도 소지하지 않았다.


여러번에 걸친 안내와 주의사항으로 우리는 이미 긴장해 있었다.


8시 출발 예정으로 되어 있던 13대의 개성관광버스(현대소속)는 9시 40분이


되어서야 움직였다.


북한의 통신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도 있고 요즘은 자주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했다.


다시 도라산역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개성에 당도하여 시내로 진입히였다.


판문점의 큰 경계는 없었지만 가로등의 구조나 모양이 바뀌면서가 경계인 것을 알 수 있었고 노무현대통령이 건넜던 노란선은 빨간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튼 육로를 통해 개성으로 진입하면서 산에 나무가 없는 것, 주변에 민가가 드문 것, 아예 사람이라고는 잘 볼 수 없는 것등 이미 사전에 들은 정보와 동일하여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듬성듬성 한결같은 기와집에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썰렁함은 여전히 의문을 낳게 했고 마을이 있는 어귀에는 부동자세의 군인들이 서 있었다.


체제에 관한 이야기, 경제적인 요건등을 묻지 말라는 교육 덕분에 우리는 시키는대로 행동할 뿐 어떤 제스처도 마음대로 취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박연폭포와 관음사


처음 당도한 박연폭포는 한꺼번에 내린 50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 혼잡을 이루었다. 커다란 돌판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붉은 글씨로 써 놓고 경관이 좋은 곳에는 찬양의 글이 씌여
있었다.


하늘에서 퍼붓는 듯한 폭포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주변을 압도했고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로 주변은 발 딛을 틈새가 없었다. 주변에 설치된 간이 판매장은


북한 상품을 보려고 뺑둘러 모인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화폐는 달러만 통용되어 약과(개성약과는 유명하다) 한 포장에 2달러 주고 여럿이 맛을 보니 담백한 맛으로 맛있었다. 우리가 먹었던 달고 기름진 약과가 아니라 여러겹으로 부드럽게 포개져 기름냄새가 적게 나고 단맛이 약했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박연폭포를 지나 관음사로 올라 가는 길은 높았고 층계가 많아 힘들어 했지만 한번 마실 때마다 10년씩 젊어지는 약수를 먹기 위해 부지런히 올라갔다.


곳곳에 설명하는 문화해설사들의 말소리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보느라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민속여관


새벽부터 일찍 출발하는 덕분에 배가 몹시 고팠다.


곳곳에서 녹두전등을 팔며 입맛을 불렀지만 한가하게 앉아 먹을 여유는 부리기 어려워 점심시간만을 고대했다. 미리 예고했던 13첩 반상기의 기대감은 더욱 높아갔고 한꺼번에 다 수용할 수 없어 통일관과 민속여관으로 나뉘어 앉았다.


유기그릇의 13첩 반상기는 개인에게 힐당된 것으로 우선 분위기를 압도했다.


대접받는 다는 기분이 들도록 정성껏 차려진 밥상에 배를 채운다는 의미보다는 그 정성과 북한의 음식을 맛본다는 생각이 미처 천천히 꼭꼭 씹어 천천히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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