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가 개학할 즈음에 어머니는 서울에 계셨다.

인호네가 이사를 하게 되었고 새로
대리모 역할을 하게 된 아기도 볼겸으로 서울로 나들이를 가셨던 기간이다.

집에 오신 어머니는 밤새 불을 켜고 계셨다.

늘 곁에서 자던 성지가 없으니 너무 쓸쓸하다며 잠이 오질 않는단다. 네 마음도

그 마음과 같아 토요일에 풀무학교로 갔다.

마을 회의로 늦어져 빠른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오후 3시에 성지 좋아하는 간식과

필요한 물품을 챙겨 들고 갔다.

입학식에도 가지 못한 죄책감이 있는 나는 더욱 미안한 맘이 들었고(학부모 중

엄마가 안 온 사람은 성지뿐이라고 성천아빠의 귀뜸 때문에 더욱...), 이번 방문으로

성지 마음이 녹아지기를 은근히 기대도 했다.

아빠와 헤어지며 후두둑 눈물도 흘렸다는데...

풀무의 토요일 오후는 고요했다.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이제 봄을 시작하려는 동산과 학교 주변에는 푸릇한 새싹이

조금씩 비치고 있었다.

전에는 남자 기숙사로 있던 맑은 집에 이제는 여학생이 많아 그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변이 약간 황량했던 모습에 비하면 여학생 기숙사라고 나무로 담도 예쁘게

만들고 대문도 있었다.금남의 집이라 성천이 아빠는 밖에서 배회했고 어머니와 나는

성지가 살고 있는 방에 들어갔다.

여학생 4명이 오밀조밀 나름대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성지는 생각보다

밝게 생활하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6시20분기상, 체조, 기도회, 청소등의 시간이

아직 숙달은 되지 않았지만 따라가고 있었다.

'엄마, 농사가 공부인
줄 몰랐어요.' 대뜸 만나자마자 농사 이야기부터 했다.

'그럼, 농사는 과학이고 종합예술이야.'

고추씨 파종하고, 파도
심고, 그 하우스안을 책임 맡아 아침저녁으로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단다. 집에서
눈으로만 보던 것을 직접 실행에 옮기면서 약간 힘들어 했지만

자신의 몫이라 여기고 성실히 기록까지 하고 있었다.

풀무생협의 빵을 좋아하는 성지와 함께 빵을 먹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머니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 사랑하는 성지에게

우리 성지가 무척 보고 싶구나. 성지야 열심히 공부해서 공주사대 가라.

꼭 교사가 되거라. 할머니 부탁이다.'

5만원 금일봉까지 넣어서 성지에게 전해주는 어머니. 네 고모들이 교사하는 걸 보니

참 좋더라시며교사가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어릴 때부터 성지에게

늘상 말씀하시곤 했다.

물론 성경이는 할머니 허리 고쳐준다고 의사한다고 했으니 성경이는 의사,

성지는 교사, 성천이는 교수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이 소원이 어디에서 근거하는 지는 모르지만 아이들도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았을 터이다.아우튼 어머니 편지를 들고 성지는 수줍은 듯 웃었고

우리는 박수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떻게 헤어지나 고민했는데

성지 친구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우리는 얼결에 빠져 나왔다.

하나,둘 둥지를 빠져나가는 아이들이다.

어느 새 커 있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고 자기가 할 일을 해나간다.

그 동안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들, 부모가 바쁨을 핑계로 가끔 자리를 비워도

채워주는 어머니 보살핌 덕분에 아이들은 무조건적인 사랑도 많이 배웠단다.

함께 가는 길. 어머니가 걸아간 길 뒤따라 가는
우리. 그리고 그 뒤에 아이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연결된 고리 확인하며 힘차게 발걸음 내딛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