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기가 하늘을 거미줄 치면서 매달리고
운동장은 하얀 줄무늬로 멋을 내는 날.

운동회 전날은 늘 붐볐다.
국밥을 파는 아줌마들이 줄을 그어놓고 포장 치고
가마솥 걸어놓고 손님 맞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파는 아저씨들도 이미 자리를 찜해 놓은 날이기 때문이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선 사람들 틈을 뚫어야 겨우
볼 수 있었던 구경거리. 그 날은 찐고구마도 좌판에 올려져 있고
땅콩은 하얀실에 꿰어 걸려 있었다.

고깔모자 쓰고 하얀 옷에, 엄마가 만들어준 하얀 버선을 신고
소고치며 공연하던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


며칠전부터 막내달 성지는 운동회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리기에 바빴다. 엄마가 운동장에 오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기도 엄마손 잡고 게임에 임해야 된다고
누누히 강조하며 엄마 대신 자기 손을 잡고 뛰어 준
사람들을 말했다.

전날 하얀 티셔츠를 다리미로 다리고 머리끈, 반바지, 흰 양말,
운동화를 가지런히 머리맡에 두고 잠든 성지를 보면서
내 어릴 적으로 돌아갔다.

운동회날, 이미 다른 일정이 계획에 들어 있었지만 전날
내가 할 일을 미리 준비해놓고 모임에 나가 양해를 구했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라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어서 가보라고 떠밀어 급히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파장이었다.
그 옛날 깨금질을 해도 볼 수 없었던 운동장였을
이 곳이었음을 어머니는 강조했지만 상상이 안될
정도로 운동장은 비어 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아빠가 대신했고 팔뚝에 "1"숫자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걸 보니 달리기도 끝난 모양이었다.

2부 순서로 학습발표회를 위해 강당에 모인 학부모와 아이들.
요즘은 운동회도 많이 변했다.

아이들의 기량을 보이는 순서에 성지가 나오기만 하면
주변에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고 그저 우리애만 보였다.

영어로 노래 부르기, 요즘 유행하는 노래로 모션하기, 고전무용,
사물놀이... 나름대로 열심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이는 모습이
기특하고 또 기특해 박수도 열심히 했다.

이제 초등학교 운동회는 올해로 끝이라며 나름대로 열심히
하던 성지에게 좀더 잘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났다.

소중한 걸 먼저 하지 못하는 엄마, 안보다는 바깥에만 더 신경
쓰는 엄마때문에 성지는 혼자하는 일이 많았는데도 제법
해내는 모습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 본 가을 하늘은 더 맑고 ,높고,
깊어가고 있다.

인생의 가을 운동회에 나는 무엇을 즐길수 있을까?
마음껏 뛰면서, 노래부르며, 춤을 추면서, 연주하면서
내 인생의 잔치자리를 마련한다면 어떤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