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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업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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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95회 작성일 03-06-0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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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농촌과 여성농업인의 역할인생은 경험한 만큼 알게 되고 보인다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되는군요. 단순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먹거리의 생산에 대한 부담감 없이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거나 혹은 의식 없이 생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 하나가 눈에 보이고, 그냥 스쳐갈 수 없는 생산자의 입장에 있습니다. 단순히 생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어렵지만 보람된 일을 하면서 스스로 가끔은 힘들다고, 외롭다고 넋두리하기도 합니다. 이만큼 농촌에서의 삶은 나를 성장하게 했고 배려하게 했으며 사람구실을 하게 했습니다.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주변에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고독하고 힘들게 저항해야 하는 각오를 갖게 하는 외로운 길인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농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거창한 꿈을 안고 시작된 생활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사는 곳은 어디나 살만한 곳 일거라는 단순한 명제였습니다. 그리고 꿈이 있는 곳에는 그만큼 인생의 보람도 크리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주저함 없이 선택했고 지금 큰애의 나이가 17살입니다.지금 이 글을 쓰면서 17년이라는 세월이 한꺼번에 스쳐갑니다.임신과 유산 그리고 병원 신세를 져야했던 일과 병행하여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나씩 치러내야 했던 일상처럼 굳어진 공동체. 남편의 공동체철학에 완전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들에게 설명하고 서로 이해 못하는 부분에 고민하고 그래서 스스로의 정체감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포기하려 했던 세월이었습니다. 1981년에 객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온 남편은 그 때부터 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뜻을 함께 하는 젊은이들과 힘을 규합하고 농촌의 희망을 경제적 자립으로 결론짓고 뜻을 키웠습니다. 그 때의 준비가 1987년에는 도시의 소비자를 직접 찾아 나서게 되었고 서울등 대도시 주변과 익산, 군산의 주변도시 그리고 서천, 장항을 소비처로 삼아 직거래를 했습니다.명농당이란 태동 모임 이후 열린 이웃의 이름으로 마을 공동체가 결성되기 시작해 14농가가 열린터 생명공동체로 결성되어 영농법인을 만들었습니다.유기농산물에 대한 직거래에 이어 죽염을 생산해 판매, 그리고 죽염장류로 점차 발전하면서 공동체에서 조금씩 소득을 분배하고 다시 재투자하는 과정을 거쳐 제법 자산을 늘렸습니다.이 과정에서 여성들만의 죽염장류사업을 독립체로 인정하면서 여성지도자가 키워지기 시작했고 농산물 생산은 여전히 모든 공동체들이 함께 했지만 유통의 한계를 넘지 못해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생산도 마찬가지였지만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 놓고도 판로가 막혀 직접 판매에 나섰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많은 경험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고 너무 힘들게 지나간 시간들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는 결론을 갖게 합니다.그래서 결국은 찾아오는 농업을 생각해 내었고 지금껏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는 우리의 전통미풍양속인 두레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농촌은 우리의 공동체의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게 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변화가 되고 있으며 어려운 세월을 겪어 온 위기감 때문인지 아름다운 두레 공동체 의식보다는 실리를 따지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공동경영책임으로 누군가 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들이 공동체를 허물게 했고 지도자의 힘을 빼앗았습니다.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일에는 나이, 학력, 남녀 노소를 초월 할 수 있는 지도자의 탁월한 역량이든지, 경제적인 성과든지, 눈에 뜨일만한 놀라운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농촌에서의 일이란 그렇게 큰 변화를 빠르게 가져오지 못해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서로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모두에게 덕이 되는 이치를 서로 알지 못한 것도 문제가 되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인생을 잘 정립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저에게 인생선배로서 도움을 주었던 많은 분들을 통해 우리의 농촌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가를 제시했고 스스로 터득하게 만들었습니다.이름 모를 산골에 한 여인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이 농촌을 알려야 하는 여인이어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갖고 있던 좋은 생각을 펼쳐야 하는 사명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떠나려고 하는 요인을 장점으로 부각시키면서 우선 시부모님과 남편의 동의를 얻어 공부하며 준비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는 남편과 자신의 꿈을 며느리를 통해 성취하고 있다고 믿는 시어머님과 가까운 이웃들의 배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는 농촌조직의 틈새에 비집고 들어간 기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린투어, 어메니티. 생태관광의 친환경적이며 마치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흙과 함께 하는 일에 여성이 합류한다는 것, 21세의 장점인 여성화, 정보화에 부합된 것도 하나의 기회가 되었습니다.그래서 신지식인으로 선정, 여성농업인센터 개소, 농림부장관의 방문, 아름마을로 선정된 일, 마을 가꾸기 경진대회 수상, 정보화마을, 마을 주민 일본연수 등 기억될만한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아직 여성농업인 지도자를 보는 시각이 편협적인데 있습니다. 농촌이 육체적 노동을 통한 생산을 위주로 하는 관행농업에 주력해 있어 여성의 힘이 농촌의 발전에 미약하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농촌이 소외되었다면 그 중에서 더 소외계층이 여성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주부, 며느리, 어머니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역할까지 주변의 배려 없이는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리고 일반 마을과는 달리 무언가 역동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곳에는 지도자간의 늘 갈등구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전문가들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라고 조언하지만 아직도 여성이 남성지도자와 동등하게 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어쩌면 여성농업인 자신이 극복하지 못해 미리 포기하는 일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저는 요즈음 여성지도자 양성에 관심이 많습니다.지도자로서의 한계를 느낀다면 느끼는 대로 여성끼리의 네트워크를 확실히 하여 서로의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구성체를 만들려고 합니다.그 일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필요하고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겸손한 자세로 배움을 갖고 적극적인 도전정신으로 미래의 비젼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할 때라고 봅니다.정부에서는 여성농업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농업이 우리의 평생 직장인만큼 안심하고 일할 수 안정된 농업구조와 복지부분에 많은 혜택을 주어 농업인으로 자긍심을 더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오래된 미래를 안고 사는 우리가 인간으로 향유할 수 있는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인생에서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삶을 사는 행복한 여성농업인들을 그려봅니다. 6월 5일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여성농업인 세력화를 위한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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