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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보 이야기(2)-마서면 남전리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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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319회 작성일 02-05-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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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후퇴 직전 친구소개로 지금의 남전마을로 이주고향에서 함개 농사를 지었던 진구 김륭선씨로부터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1·4 후퇴가 나기 얼마전이었다. 이미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김륭선씨는 충남 서천군 남전마을의 남전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다.친구의 말을 듣고 이곳에 온 정순보 옹은 지금껏 40여 년을 살고 있었다.그는 이곳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돈버는 일로써는 별고 성공한 것이 없지만 그는 <씨앗>을 세상에 뿌리는 일로써 큰일을 했다. 전쟁 당시 우리의 먹을 것은 늘 곤궁하기만 했다.공산품도 그랬지만 농산물도 거의 수입·배급해서 살아가던 시기였다. 배추하나, 무우하나 우리 땅에서 씨를 내어 기르지 못한 시절이었다.그는 이곳에서 산성화된 우리나라 땅에서도 잘 자랄수 있는 우수한 배추품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청방고근배추였다. 52년 식물학자 우장춘 박사가 청방배추를 부산 동래 농업과 학연구소에서 직접 중요 연구대상으로 삼아 재배했다고 한다. 배추 씨앗이 임시 수도인 부산 모래벌 수십만평에 심겨져 놀라운 작황을 기록했다는 일화도 갖고 있고 지금까지도 이 품종은 한국의 대표적 배추 품종으로 이어져 간다고 한다.중동건설현장인 사막에서도 이 씨앗이 심겨져 수십만 근로자들에세 고국의 배추맛을 느낄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왜무씨>에 있어서도 그는 큰일을 했던 사람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무씨앗을 전량을 사들여 재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친구인 흥농종묘사 이춘섭회장에게 <이것을 우리가 해보자>고 권유, 일본 나카사키와 위도가 같은 제주땅에 왜무씨를 심었다. 그런데 발아가 되지 않았다. 단지 돌짝 사이로 몇개가 살아났을 뿐이었다. 원인을 분석해보니 제주도는 화산회가 있어 땅이 검고 가벼워 발아가 어려웠고 돌틈에서 살아난 것은 무거운 진압효과로 발아할 수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이듬해 충분히 땅진압을 해주고 왜무씨를 뿌리니 대풍작이었다. 여기에서 거둔 씨앗들을 대관령에 심었고 이후 대관령 고냉지 채소의 시원이 되었다고 한다.제주도에서의 경험은 무씨만 아니라 유채꽃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제주도의 독특한 명산물이 된 유채꽃은 왜무씨 성공직후 심기 시작한 꽃이었다.그는 원예농사에 일찍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잠시 근무했던 화신백화점 온실에는 없는 꽃이 없을 정도였고 당시 화신백화점 박홍식 사장이 온실을 둘러보고 매우 감탄해 온실을 위임경영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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