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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영규 댓글 0건 조회 2,102회 작성일 13-03-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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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로]토마토 농사 짓겠다는 대기업

최용혁 | 서천군 농민회 교육부장



씨 뿌리는 농부보다 쑥이며 냉이를 캐는 손길이 먼저 봄을 맞이합니다. 색동옷 입고 제 오시는 봄 처녀를 상상하신다면 뭘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만, 뽀글이 파마, 굽은 허리에도 마음만은 살랑살랑, 그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분들의 주장입니다. 일이 아니라 놀이라고 생각하는 두 딸들도 이 빠진 과도를 들고 나섭니다. 덕분에 밥상은 날마다 쑥, 냉이 ‘또 된장국’입니다. 먼 산은 아직 황량하지만, 끼니마다 봄 향기는 가득합니다.



마을 도서관 뒤편에는 삿갓으로도 덮을 만한 작은 밭이 있습니다. ‘여우네 텃밭’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감자, 옥수수, 고추, 고구마 등을 심어 키우고 먹습니다. 강제 노동이니 하며 새살대는 녀석들도 가끔 있기 마련이지만 우르르 딸려 나오는 감자나 고구마에 감탄하고 부쩍부쩍 자라 자기 키보다 더 커 가는 옥수수대가 신기합니다. 무엇보다 먹을 때만큼은 다들 행복해 보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식생활교육은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첫째는 김밥입니다. 배운 것은 꼭 실천해야만 하는 엄마들은 가장 먼저 김밥에서 단무지를 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이것도 괜찮네!”하며 금방 적응했지만, 단무지 없는 김밥을 ‘앙꼬 없는 찐빵’과 거의 동급으로 생각했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단무지를 끊을 때는 묘한 금단 증상 같은 것도 느껴졌습니다. “맛있지? 괜찮지?” “자꾸 물어 보지마!”



두 번째는 막걸리입니다. ‘돋보기를 쓰고 봐야만 보일 수 있게 적어라’ 하는 지침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식품 성분 분석표에서 식품첨가물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자는 독이다’를 쓴 안병수 선생님이 특별히 강조한 덕에 아이들은 아스파탐이라는 외래어를 제멋대로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술 먹느냐는 잔소리가 아니라, 아스파탐 먹느냐는 잔소리를 견뎌야 합니다. 환갑쯤 된 동네 아저씨들에게 가장 잘 먹었던 마지막 세대일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니가 보릿고개를 알어?’ 하시지만, 지금 기준의 건강식, 자연식을 어쩔 수 없이 제대로 먹었던 마지막 세대임이 분명합니다.



규모화, 현대화해 오면서 농기구보다는 농기계가 익숙한 나같은 속 빈 껍데기 농민만 늘었고 더 행복해지지도, 더 건강해지지도 않았습니다. 불과 몇 십년 만에 피사리는 농약으로, 퇴비는 비료로, 땀은 석유로 대신해 오면서 농사와 밥상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왔습니다. 그 틈을 끊임없이 조장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온 것들이 있습니다.



동부그룹은 도시사람들에게는 보험이나 화재로 익숙하고, 농민들에게는 농약, 비료 등을 파는 농업계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그룹의 계열사인 주동부팜한농이 경기도 화성의 화옹 간척지에 대규모 유리온실을 짓고 토마토를 재배한다고 합니다. 4만5000평의 땅에 500여억원을 들여 아시아 제일의 유리온실을 짓고 연간 토마토 5000톤 생산, 1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합니다.



정부는 FTA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를 보전해 주기 위해 만든 ‘FTA 대책자금’을 무려 87억원이나 쏟아부었습니다. 농민이 아닌 기업에 말입니다. 농산물은 전체 물량의 5% 내외의 과잉과 부족으로도 유통을 혼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구조를 만들어 온 재벌의 방식을 ‘참 창조적으로 적용하고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재벌 3세들의 빵집 경영 때문에 한참 시끄러웠습니다만, 재벌 3세들이 얼씬할 리가 없는 서천 바닥에도 신라제과, 독일빵집이 사라진 자리를 식품그룹의 계열사가 양분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동부그룹이 토마토 농사를 짓겠다는 일은 서부그룹이 채소 농사를 짓고 남부그룹이 축산을 하며 급기야 북부그룹이 쌀을 맡겠다는 것을 우리가 봐 줘야 하나 하는 문제입니다. 농사와 밥상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할 것입니다. 엄마들이 애써 빼 왔던 단무지와 아이들이 힘들게 기억했던 아스파탐에게 문을 활짝 열어 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당장 2만여 토마토 재배 농가들의 생존에는 검은 하늘입니다.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박노해 ‘하늘’ 중



하우스 몇 동에 인생을 걸어 온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처분만 기다릴지, ‘제기랄, 차라리 내가 하늘이 될지’ 하는 어려운 선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농민 친구가 하나만 있었으면’, ‘고맙다고 말해주는 소비자가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들이 간절해지다가 마침내 눈물로 끝맺는 일이 없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요. 농민의 힘만으로 어쩌지 못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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