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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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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골의사(펌) 댓글 0건 조회 1,592회 작성일 08-07-1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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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





최근 두 달은 꽤 길고 힘든 기간이었다.





지난 6년간 몇 번이나 썼다가 버렸다가, 다시 쓰는 일을 반복해온 투자관련 서적을 탈고하느라 새벽 5시에 잠자리에 들기가 예사가 되면서 생활 습관이 무너진 탓이다. 낮에는 일상적인 일들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니 식사를 거르기는 예사고, 커피는 아예 물을 마시듯 들이켰다.





그러던 어느날, 명치가 불편해졌다.





처음에는 약간 얼얼한 수준이었다가, 일주일쯤 지나면서는 종일 상복부의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연히 위염이 생길만한 환경이었던지라 별 생각없이 위염 치료제를 처방해서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증상이 회복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점점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약의 단위를 높였다. 1차 약에서 2차 약으로, 다시 비보험으로 처방한 3차 약까지 먹었다. 하지만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나중에는 식사가 힘들정도까지 증상이 악화되었다. 그게 두달 전이다.





약간 두려움이 생겼다.





어지간한 위염은 약을 복용하면 1주일, 궤양의 경우 2주일이면 일단 증상은 개선된다, 최소 6주 이상 약을 복용해야 완치가 되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최소한 증상의 개선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위염이나 궤양은 식후에 증상이 호전되고, 공복에 악화되지만, 암의 경우에는 식후에 더 불편한 특성이 있다. 그런데 내 증상이 바로 그랬다. 식후에는 불편감이 더 심해지고 공복에는 통증이 일상적으로 함께 했다.





그러고보니 아직 내시경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명색이 장을 다루는 의사이면서도 스스로는 장검사를 해본적이 없다. 이상한 고집에 가까운 것이지만, 나는 마흔 다섯부터 건강검진을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왠지 아직 필요치 않은 나이에 아득바득 건강을 체크하고, 매달린다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는 그렇지 않으면서 정작 스스로에게는 이상한 아집을 가진 것이다.





아무래도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즈음들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살이 빠졌다, 안색이 좋지 않다, 피곤해 보인다,,는 인사아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두어달 전부터는 방송국의 피디조차 요새 다이어트를 시작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불특정한 위통, 그리고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증상, 체중감소, 모든 것이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잠자리에 들면서 명치끝을 만져보았더니, 배꼽과 명치 사이에 덩어리가 하나 만져졌다.





외과의사의 촉진은 예민하다, 더구나 완전히 누운 상태에서 스스로의 배를 촉진해서 덩어리가 만져졌다면, 그것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종양이라는 의미였다. 곰곰이 돌이켜 보았더니. 췌장의 종양일 가능성이 컸다, 우선 위암이라면 이렇게 급작스럽게 증상이 나타날 리가 없다,





더구나 음식물이 위에서 소장쪽으로 잘 내려가지 않고 역류하는 소리가 청진기에서 들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췌장 두부암이 십이지장을 막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위암이 촉진에서 만져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만약 내 진단이 맞다면 길어야 6개월이었다..





갑자기 처연한 마음이 들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남겨진 인연들에 대한 대한 미련이 너무 컸다. 이제 겨우 만 네 살이 된 딸아이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검사를 할 수가 없었다. 만약 검사를 해서 암이라는 진단이 나온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마무리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미리 바람을 잡았다.





책을 다 쓰고나면 티벳 여행을 좀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모두 그렇게 말해 두었다, 췌장 두부암이라면 치료방법도 없고, 통증을 관리하며 죽는것 밖에는 도리가 없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비참하다, 그것을 보이기도 싫었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그 과정을 함께하는 고통을 나눠주기 싫었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 지방의 어느병원에서 연명치료없이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남겨질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언젠가 그 순간이 오면 남겨진 가족들에게 보내어질 편지가 될 것이다. 친구들에게도 뜬금없이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내 가족을 챙겨달라고 부탁했더니, 꼭 오래 살 놈들이 저런말을 한다면서 웃어 넘겼다. 주변을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벌려 놓은 일들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그렇게 기억되고 싶었다. 그래서 강연도,방송도,칼럼도, 심지어 새로 시작하기로 했던 인터뷰도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시점까지는 태만하지 않아야 겠다고 작정했다.





세상이 아름다워보였다.





안동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오며 차창으로 스쳐가는 신록들이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저 모습들은 언제까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까.. 늘 보던 장면들이 새록새록 더 저리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친구들에게 전화도 하고, 어머니께 안부전화도 늘렸다. 주말에는 동생네를 찾고, 강연에서는 내가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아주대학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강연하면서는 서 있기도 힘들었다. 어쩌면 대학생을 상대로 하는 강연은 그것이 마지막이 될지 몰랐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풍산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는 학교에서 내미는 작은 사례를 아이들의 간식비로 내 놓았더니 학교에서 다음날 떡을 해서 돌렸다는 얘기를 듣고는 괜히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러고보니 지금 쓰고 있는 책도 유고가 되거나, 아니면 마지막 책이 되는 셈이었다. 최대한 빨리 탈고를 하기로 작정하고 밤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서 최소한 유고가 되도록 하지는 않아야 생각했다. 내가 보는 모든 세상이 모두 아름답고 처연했다. 촛불집회장 주변에서 생존권을 호소하며 명멸하는 촛불들을 바라보며, 백가지 마음이 촛불처럼 생겨났다 스러져갔다..





지난주에 결국 회의중에 복통으로 쓰러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마에 식은땀이 나고, 견딜 수 없는 복통이 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부축을 받아 일어나면서 결국 이제는 병원에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마무리 하지 못한 많은 일들도 이제 정리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미 계획은 서 있었고, 나와 관계된 사회에는 미리 준비해 둔 양해편지들을 보내면 된다. 내용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외국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지만, 혹시 그것이 불필요한 곡해를 불러 오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대학병원에 가면 금새 소문이 날 것이고, 그렇다고 개인병원에서는 확진이 불가능한 질병이었다. 우선 우리병원에서 초음파를 해보았다, 내손으로 내 배위에 초음파 프로브를 댔다, 친구조차 모르게 혼자서 은밀히 검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췌장두부 주면에 이상한 음영이 보였다. 내장동맥과 정맥도 부풀어 있었다. 종양에 눌린 탓이다.. 이제 더 이상 확인은 필요 없었다, 하지난 전이여부를 알아야 남은 시간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진통을 막을 방법도 찾아야만 했다..





도리없이 경기도 모 병원에 근무중인 처남을 찾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일은 자네와 나 둘이서만 알아야 한다, 누나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는 극비리에 환자접수를 하고, 처남병원에서 검사를 시작했다. 긴장한 처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차피 사람은 시기의 차이일 뿐,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다만 더도덜도말고 꼭 십년만 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딸아이가 아빠가 옆에 없어도 좋을 나이만큼까지만 내게 시간이 주어지길 바랬지만, 어차피 운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링거를 달고 CT 촬영을 시작했다.





기분이 묘했다, 이때까지 내가 진단한 환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들이 이 진단기 아래에 누워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걸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조영제가 팔로 주입되면서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환자들이 말하는 뜨겁다는 기분이 이런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방사선 기사의 호흡조절 지시를 따라 숨을 쉬면서 내가 오더를 내서 CT 검사를 했던 환자가 몇 명쯤 될까 생각해 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검사를 마치고 검사실 밖으로 나와 처남에게 물었다.





덩어리가 크더냐고,, 전이가 많이 된것 같더냐고 물었다, 하지만 처남은 너무 당황해서 검사실밖에 나가 있었다고 했다, 필름이 나오면 방사선과 과장에게 물어보자고, 자기는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이미 상황이 많이 악화된 것이라 여겼다. 처남이 내과 의사인데, 모니터로 이미 확인한 것이 분명했다. 처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처음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끝까지 의연해야겠다는 마음이 약해지고, 앞으로 겪을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오랫동안 끊었던 담배를 한 갑 샀다, 병원 밖에서 담배를 피워 무는데, 옆을 지나던 의사가 아는 체를 했다. 짐짓 웃으면서 처남을 만나러 온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그순간 처남이 급하게 나를 불렀다.





그런데 그 친구의 표정이 이상했다. ‘매형.. CT 에는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아요, 방사선과에서 매형이 한 초음파에 보였다는 음영이 무엇인지 다시 초음파를 한번 해보자고 합니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라는 기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랐다.. 그리고 초음파, 내시경 검사등을 연이어서 실시하고, CT 도 간격을 좁혀서 다시 시행했다.





결과는 미란성 위염과 췌장염 이었다.





몇 달씩이나 밤을 세우고, 커피를 마신 것이 화근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초음파 상에서 본 이상한 음영은 췌장이 무리가 오면서 가벼운 췌장염이 있었고, 그로인해 그리보인 것이라고 했다.. 내시경을 하면서 내 스스로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수면 내시경이 아닌 일반 내시경을 선택했기 때문에, 나는 내 위장속을 내시경 카메라가 휘젓는 모습을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위암이 아닌것은 확인 했지만, 췌장도 염증이 있었고, 통증도 그로 인한 것이었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함박 눈이 내리고, 사방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인생을 다시 선물 받은 느낌이 이런 것일 것이다.





지금 돌아서서 생각하면 부끄럽다, 구름을 보고 혼자서 양, 사자,라며 그림을 그리듯 나는 내가 의사이면서도 내 스스로 병을 만들었고, 상상을 통해 그 병을 확정하고, 그 병에 짓눌려서 서서히 죽어갔다. 처남이 말했다. ‘ 매형 진짜 세상에 가장 강한 플라세보가 의사가 주는 암시라더니, 이건 정말 가장 강력한 역 플라세보네요..’





정말 그랬다.





의사가 주는 암시가 병을 고친다, 반대로 의사가 주는 잘못된 암시가 병을 악화시킨다, 나는 스스로에게 암시를 주고 스스로의 증상을 악화시켜 온 것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처방을 받고 약을 먹었다. 약은 내가 처방한 약이나 처남이 처방한 약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약인데, 검사를 받은 다음날 아침 자고나니 통증이 사라졌다. 마치 거짓말처럼 말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이 글을 쓰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경험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두 달 내겐 악몽이었다, 그러나 상상도 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웠다. 삶은 아름답다. 주어진 시간은 소중하다. 그리고 내게 소중한 그 시간들은 타인에게도 그만큼 소중한 것들이다...





삶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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